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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08 09:24
장애인 선수와 함께 뛴 36년, 내 생애 최고의 무대였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85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7096 [818]
매일 오전 10시경이면 지하철 3호선 녹번역으로 걸어가는 노신사 한 분이 있다. 흰 머리칼이 이마 양 갈래로 뻗쳐 내리 꽂는 폭포수 같아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데, 발목이 불편한지 지팡이를 짚고 지하철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더니 맞은편 출구를 향해 다시 계단을 오르며 밖으로 나간다.

이렇게 녹번역 사거리를 건넌 노신사는 바로 앞에 보이는 아파트 상가 건물로 들어섰고 3층 계단을 올라 ‘곰두리사랑회’라고 붙여진 철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은평구 응암동에 사는 노신사의 매일 반복되는 도보 출근길이다. 이 노신사는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선수들과 36년을 함께해온 곰두리사랑회 신철순(79) 회장이다.

다섯 평 남짓한 사무실 안에는 사방이 축구 관련 책자와 대회 입상 트로피, 상패, 표창장, 기념품, 행사 사진, 자료집 등으로 꽉 차 있다. 이 중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과 표창장이 눈에 띈다.

2002년 제8회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한 신철순 감독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대한장애인축구협회 부회장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그리고 2009년에는 한·일 뇌성마비장애인 축구 교류에 공헌한 곰두리사랑회 신철수 회장이 일본 왕실재단으로부터 받은 상장과 훈장도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사무실에는 신철순 회장이 걸어온 삶의 족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88 서울장애인올림픽에서 싹튼 꿈과 희망

축구 선수 출신으로 지도자 생활과 축구 행정까지 맡아본 신철순 회장이 장애인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 후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에 출전할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을 만들어야 했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 팀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이에 전국의 장애인복지관에서 선발한 11명의 선수로 대표팀을 꾸려 훈련을 한 뒤 10월에 열린 대회에 참가했는데, 6개 출전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죠. 아깝게 동메달을 따지 못해 너무 아쉬웠죠. 그래서 해단식 때 선수들에게 축구를 계속 하고 싶으면 다음 주에 훈련장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모두들 나왔더라고요.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곰두리란 명칭은 장애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에서 따 왔구요.”

이후 신철순 회장은 곰두리축구단 감독과 곰두리사랑회 회장을 맡으며 장애인 선수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장애인 축구는 시각, 청각, 지적, 뇌성마비장애인으로 나뉘는데 곰두리축구단은 뇌성마비장애인축구대표팀 선수를 주축으로 1988년 11월에 창단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훈련을 했지만 얼마 후에는 뇌성마비장애인팀이 3팀으로 늘어나 대회를 치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991년에는 제1회 사랑의 친구 곰두리축구대회를 개최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갔다.

1998년 9월 브라질에서 개최된 세계뇌성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곰두리축구단은 우리나라 최초로 20만 명을 수용한다는 세계 최대 경기장인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공식 경기를 했고 2003년 아르헨티나, 2011년 네덜란드 세계뇌성축구선수권대회까지 참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유럽 11개국을 돌면서 친선 경기를 펼쳤고, 2012년 4월에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창설한 아시아 뇌성마비장애인 국제축구대회에 나가 아시아 6개국 장애인 선수들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진 꿈과 희망을 나누는 국제 무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곰두리축구단, 대한민국 공군과 함께 뛰다

곰두리축구단은 2006년부터 대한민국 공군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성일 공군참모총장은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단이 훈련할 곳이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 공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곰두리축구단은 2007년 5월 공군훈련비행단 운동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제1회 곰두리축구대회를 열면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해마다 8월이면 공군사관학교에서 일주일간 합숙 훈련을 했는데, 훈련 마지막 날에는 성무천연잔디구장에서 공군사관학교 교장과 장교단, 후원 인사들과 함께 친선 경기를 펼치며 ‘높은 힘’ 공군의 기를 받아 정신력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됐다.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소통의 무대’로 발전

장애인의 날 기념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대회와 전국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대회, 꿈과 희망 나눔 장애인과 함께하는 대회 등 비장애인이 참여하는 경기가 연간 3회 이상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보조구장,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 등지에서 개최됐다. 2000년부터는 일본과 뇌성마비장애인 축구 교류를 시작했고, 2012년에는 일본뇌성마비 에스페란자 축구단과 자매결연을 맺은 뒤 도쿄한국청년상공회 후원으로 열린 한·일 뇌성마비 사커대회에 참가했다. 또한 한·일 친선 사랑의 친구 곰두리축구대회는 양국을 오가며 14년간 지속되면서 장애인들의 꿈과 희망을 축구를 통해 널리 알렸다.

곰두리축구단은 지난 2019년 4월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뇌성마비장애인축구대회와 5월 사랑의 친구 곰두리대회 그리고 8월 공군사관학교 합숙 훈련에 이어 9월 꿈과 희망 나눔 장애인과 함께하는 대회 등 4개 행사를 마쳤으나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행사가 중단된 상태이다.
한·일 뇌성마비장애인 친선 대회에서 붉은색 상의를 입은 곰두리축구단 선수들이 활약했다. ©곰두리사랑회
한·일 뇌성마비장애인 친선 대회에서 붉은색 상의를 입은 곰두리축구단 선수들이 활약했다. ©곰두리사랑회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대한민국의 장애인 선수들이 교황청 성직자, 수도자들과 축구 경기를 한다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겠죠. 경기 중 쏟아내는 선수들의 함성이 큰 울림이 되어 지구촌 모든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거 같아요.”

곰두리축구단이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하여 친선 경기를 펼치는 것이 목표라 말하는 신철순 회장은 2011년 서울을 방문했던 하버드대학 축구팀과 친선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장애인 선수들에게 좋은 추억과 용기를 주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교황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후원자와 원정 경비 마련 등이 급선무인데, 쉽지가 않다. 신 회장은 이 점을 고민 중이며 해결책을 찾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곰두리 식구, 우리의 꿈은 진행 중

2023년 2월 11일 오후 곰두리사랑회 사무실에는 신철순 회장과 양진석 부회장, 조제덕 부회장 그리고 박세환 선수가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했다.

곰두리축구단 공격수로 15년 넘게 활약했던 박세환(29) 선수는 “공군사관학교에서 훈련할 때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장군, 장교들과 같이 축구를 하면서 ‘나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공군 수송기를 타고 이동할 때는 정말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하루빨리 동료들을 만나 축구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현재 봉일천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양진석(59) 부회장은 2012년 2월부터 아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곰두리축구단과 인연을 맺으면서 볼 보이와 대회용품 나르기, 각종 서류 정리, 문서 작업 봉사를 하며 사무실 업무를 도맡다시피 했다. 또한 양 부회장은 장애인축구 봉사를 원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참가하여 보람 있는 현장 교육을 이끌었다.

“수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장애인들의 마음속에 담고 있는 희망이 비장애인을 통해 전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는 양 부회장은 “곰두리축구단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비영리법인을 구성하여 후원 시스템을 갖추고 다양한 정책과 조건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풀어 나갈 수 있는 분들이 참여한다면 명성을 이어갈 기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양 부회장은 “신 회장님이 뇌성마비장애인 축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기록으로 보존되어 후세에 가치가 있는 활동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조제덕(77) 부회장은 신 회장의 부인이다. 남편을 돕기 위해 축구지도자 자격증까지 획득하여 곰두리축구단 코치와 감독을 지내면서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고 헌신해 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선수들과 식사는 한두 번 했지만 경기는 하지 못했다"며 "축구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자주 받지만 여러 여건상 할 수 없어 너무 아쉽다”고 하는 조 부회장은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일을 해왔듯이 바티칸 교황청에서의 친선 축구 경기만큼은 꼭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조광래, 김상식 감독 길러낸 스승이 장애인 선수를 지도하다

서울 수색초 졸업 후 중동중고등학교와 건국대에서 축구를 했던 신철순 회장은 양지팀, 육군대표팀에서 활약한 뒤 은퇴 후에는 진주고, 대신고, 중앙고, 강릉농고, 경남공고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진주고 감독으로 부임해서는 한 해에 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명성을 떨쳤는데, 당시 조광래(전 국가대표 감독) 선수가 주장을 맡고 있었다.

이렇듯 신 회장의 고교 시절 대표적인 제자로는 진주고 출신 조광래 전 감독과 경남공고 출신 김상식 전북현대 감독이 있다. 지도자 생활을 그만둔 뒤에는 한국중고축구연맹-여자축구연맹-한국오비축구회 전무이사를 맡아 축구 행정을 쌓으면서도 항상 곰두리축구단과 함께했는데, 2004년에는 뇌성마비장애인축구협회가 발족하면서 회장에 취임했다.

“장애인 선수들에게 축구를 통해 협력과 소통의 중요성을 알려주면서 사회에 빨리 적응하도록 돕고 싶었다”는 신철순 회장은 최근 들어서는 선수 시절 무리한 탓인지 발목 연골 손상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있다. 신철순 회장 부부는 오늘도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행사 자료를 살펴보며 언제라도 운동장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